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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씨의 하루
용진씨는 오늘도 병원 담 너머 세상을 바라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바빠 보이는 사람과 차들의 행렬.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용진씨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분열병 증상으로 9번째 병원에 입원한지 벌써 6개월. 나도 저들 중 한 사람이었으면... 그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집에 가면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평범한 인생이었다면... 불과 15년 전, 용진씨는 지금 보이는 그 담 너머 세상에 살았습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학교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이 담장 안을 들여다보며 저 안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담장 안에 들어와 담장 너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용진씨는 무척 촉망받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번듯한 대학에 진학하여 집안과 동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불행은 대학 4학년 때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에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던 기대와 달리 4학년이 되었는데도 취직의 길은 막막해 보였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조차도 몇 군데 문을 두드렸다가 물러서는 것을 보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용진씨는 극도로 예민해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나 크고 가까이 들리는 듯 하고, 익숙했던 장소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자신을 들으라는 듯이 느껴지고,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거나, 이상한 소리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용진씨는 그것이 정신병의 시초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용진씨의 병은 점점 깊어져 갔고, 환청과 피해망상이 극도로 달한 후에야 그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3개월의 입원치료 후 퇴원했지만, 약을 계속 먹는 것이 귀찮다며 끊어버리길 수차례, 그의 병은 재발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재발을 하면 할수록 입원기간은 길어졌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도, 사람에 대한 관심도,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애착도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시간은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지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처럼 담 너머 세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용선씨는 아침부터 형의 면회를 가기 위해 부지런을 떱니다. 6개월 전 아홉 번째로 병원에 입원한 형, 용진씨를 찾아가는 용선씨의 마음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을 만난 용선씨는 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애써 웃음을 보이고 이런저런 말도 걸어봅니다. 아무 표정도 없어 보이는 형의 얼굴을 볼 때마다 용선씨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용선씨도 형 용진씨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형이 병원에 입원한 지 5년 후, 동생 용선씨도 형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용선씨는 뒤늦게 치료를 받고 약을 끊으면서 재발이 반복되는 형의 모습을 보았었기에 발병 후 바로 병원을 찾아갔고, 이후 한 번도 약을 끊지 않고 열심히 복용하였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정신보건센터를 알게 되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담도 받고 있고,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번듯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몇 년 전에는 결혼도 하였습니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이제 형제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짧은 침묵과 인사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이제 각자 가야할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한 사람은 집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병실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기로에 부딪히지만 어려움이 닥쳤던 그 순간,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용진씨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18세의 이세미(가명)양은 학교에서 친구관계도 원만하고 성적도 좋은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고 3이 되면서 수업시간에 뒤에서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자꾸 신경이 쓰이고, 예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을 거야’하며 생각을 떨쳐버리려 하다가도 신경이 쓰여 자꾸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친구들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점점 성적은 떨어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점차 학교뿐만 아니라 등하교시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되었으며, 그러다가 종종 학교를 나가지 않는 날이 생기게 되었다.
가족들은 처음에 고 3스트레스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밤에는 라디오를 크게 켜놓고 잠을 못자는 등 예전과는 어딘가 달라보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이세미양과 함께 정신과병원을 찾게 되었다.

다행이 이세미양은 증상이 더 악화되기 전이어서 학교를 다니며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약물치료 이후 증상이 호전되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병원치료와 함께 K정신보건센터 사례관리자가 정기적으로 증상의 변화를 점검해 주었고 학교생활의 어려움 등을 상담해 주었다. 가족들 또한 K정신보건센터의 가족교육을 통해 이세미양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올바른지 알게 되어 가족으로써의 불안감과 막막함을 줄일 수 있었다.


직장에서
27세 김진경씨(가명)는 직장 3년차에 들어섰다. 3년차가 되면서 왠지 답답하고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동료들은 각각 자기만의 능력을 발휘하며 나아가는 것 같은데 왠지 자신은 뒤쳐지는 것 같고 앞으로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졌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의 당차고 활달한 모습에 그녀는 더욱 위축되어 갔다.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왠지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럴 수 록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실수가 잦아지면서 자신에 대한 비하감은 더욱 깊어져 갔다. 무엇을 해도 흥미가 없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이야기 꺼리가 떠오르지 않고 기억력도 자꾸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매일 두통도 심해지고 몸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 느낌에 병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녀 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잠도 잘 못자고 매일 악몽에 시달리다가 가까운 선배에게 어렵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선배는 김진경씨가 정신과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가까운 정신과병원에 갈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정신병원을 찾아간다는 것이 더 좌절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선배는 김진경씨를 격려해주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었다.

선배의 도움으로 정신과병원을 찾은 김진경씨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당분간 심리치료를 받고 증상의 변화를 보면서 약물치료를 결정하기로 했다.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자신감을 찾고 직장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김진경씨를 맡았던 주치의는 다행히 심각한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으로 악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물치료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다른 심각한 질환에 대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쉽게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예후는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치료가 방치되면서

19살, 김창현(가명)씨는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척 괴로웠다. 그는 점차 자신이 불안하고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고, 몸 이곳저곳이 아팠다.
그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은 네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 그래가지고 어디에 쓸 수 있겠니?"라며 오히려 창현씨를 나무랐다.
그는 고민 끝에 학교상담실을 찾았고, 상담선생님은 그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다.

20살,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선임병의 괴롭힘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감을 잃었고, 아주 쉬운 일조차도 잘 해내기 어려워졌다.
주변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듯 느껴졌고,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무서운 생각에 상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상사로부터 돌아온 한 마디는…
"잔꾀 부릴 생각 말고 정신 차려!"
그리고 혼자 보초를 서던 어느 날 새벽, 어디로부터인가 "널 죽여 버릴 테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군 병원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3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의가사제대를 했다.
하지만 제대 후,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어머니의 반대 때문이었다.
“내 아들은 미치지 않았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증상은 재발했고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후 35년 동안 8곳의 정신병원과 두 곳의 요양원과 한 곳의 기도원을 거쳤고,
15명이 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부모님과 큰형의 죽음을 겪었고, 전립선 비대증과 당뇨를 얻었으며, 그의 왼쪽 눈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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